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병사의 시 (문단 편집) === 기타 ===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의 참담했던 상황, 소련 인민들의 비참한 삶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소련 공산당의 눈 밖에 났고, 이 때문에 상영관을 많이 받지 못했다. 추크라이 감독은 이 영화를 트집 잡는 관료에게 '내가 전선에서 [[뺑이]] 칠때 당신은 [[아슈하바트]][* 중앙아시아 남부 [[이란]]과의 접경지역. 최후방이었던데다 연합군으로부터 들어오는 랜드리스 물자를 받는 곳이라서 매우 평화로운 근무지였다.] 후방 사령부에서 [[땡보|꿀]]이나 쳐빨지 않았냐'고 대들었다. 참고로 추크라이 감독은 [[스탈린그라드]]등 격전지에서 싸우며 3번이나 부상당했고 무공훈장도 받은 참전용사였다. 이 영화는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셈. 영화는 대도시에서는 상영되지 못했지만 시골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게 된다.[* 참고로 소련은 외진 시골마을이라해도 [[도서관]]은 없을지언정 [[영화관]]만은 꼭 있을 정도로 영화의 보급률이 아주 높았다. 이는 [[문맹]]률이 높았던 소련 농민들에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보급하려면 글자보다는 영상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공산당의 정책 때문이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소련은 영화산업이 매우 거대해질수 있었다. 게다가 표값도 몇백원 수준으로 엄청 싸서 서민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을지언정 개봉한 지역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영화가 주는 진정한 묘미는 '''당시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힘들었던 어린시절을, 장년층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포화와 수라장을, 노인들은 돌아오지 못한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기억들을, 장면 하나하나 속에는 그 시절 소련 인민들이 겪은 고난과 역경이 모두 들어있었다. 사람들은 어려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냈고 이 영화가 상영되는 곳은 항상 울음바다가 되었다. 촌락 지역에서 이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스베스치야 편집장은 자신의 [[장인어른|장인]]인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 [[서기장]]'''에게 이를 전했고, 흐루쇼프 역시 영화를 감상한 뒤 깊은 감동을 받았다.[* 흐루쇼프도 [[정치장교]]로 스탈린그라드 최전선에서 싸웠고 전쟁통에 아들이 죽었는데도 시신을 발견하지 못해 생사조차 확인할수 없던 상태였다.] 이후 영화는 전국 영화관에 상영허가가 났고, '''3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에 힘입어 소련의 내로라하는 영화제에서 상도 탔으며 외국 영화제에도 출품까지 했다. 1961년에는 감독 본인과 각본가인 발렌틴 이바노비치 예조프가 함께 레닌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참고로 이 영화가 제작된 시기인 1950년대 후반은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공포정치로 인해 경직되어 있던 러시아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유화되어 가던, 소련의 문화적 해빙기 시절이었다. 대체적으로 이전보다 검열이 많이 느슨해졌고 그 덕분에 수 많은 공산주의 예술작품들이 탄생한 시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자유진영의 맹주였던 미국에서는 반대로 [[조지프 매카시]]의 [[매카시즘|빨갱이 열풍]]이 불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찰리 채플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외국으로 떠나거나 예술 활동을 그만 두었던 암흑기였다.] 전쟁을 소재로 하긴 했지만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장벽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인간 드라마라는 점 덕분에 서구권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을 받았다. 1960년에는 [[칸 영화제]]에 출품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심지어 '''[[쿠바 미사일 위기|서로 핵을 날리니 마니 하던 시기일 때]]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등 내로라 하는 영화제들에 출품되었고'''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는 골든게이트 상을 수상했다. 7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21세기 현재까지도 러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현재 러시아 영화계의 꼬라지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된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에서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 시키기 위해 2차대전 소재 영화들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연출과 액션은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했지만 작품성으로는 [[국뽕]]코인에 의지한 혹은 헐리우드 전쟁영화의 카피라는 악평을 받고 있다. 현재 러시아 영화는 과거의 명성에 비해 점점 퇴보해가고 있으며 그 회복은 요원해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